[기다림](2월2일, 금)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삼상13:8,9).

 

신앙생활에서 기다림은 중요한 단어입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을 때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려 놓고 가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림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기다림에는 포기의 유혹을 통과해야 하고 때로는 수모와 비참해지는 현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들어 불가능의 상황과 포기할만한 세월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인생을 포기할 정도로 너무 연약해져서 지도자로서는 거의 가망없는 자처럼 전락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를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형제들의 배신과 종살이, 감옥살이라는 상상하지 못할 엉뚱한 뒤틀려진 것 같은 인생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방법을 통해서 그 꿈을 이루셨습니다.

 

기다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슬픔과 좌절의 눈물과 애통함의 강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꽉 막힌 환경과 자신과의 싸움을 견디어내기도 해야 합니다.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지 못하면 더 긴 세월의 기다림을 감내해야하고 어쩌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세월로 끝이 날 수 있습니다.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에 있을 때 사무엘이 길갈에 오리라는 약속을 믿고 7일 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한이 차도 오지 않자 백성들이 사울 왕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왕은 급한 마음에 번제를 드렸습니다(삼상13장).

 

그러나 번제를 마치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막 도착한 사무엘은 왕의 망령된 행동을 책망했고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을 예언했습니다(삼상 13장).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삼상 31장). 사울왕은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가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저지른 결과였습니다.

사울왕에게 기다리지 못한 댓가지불은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기다림은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울왕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신뢰)이 있었다면 아무리 급해도 서두르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들을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죄였고 후에 아각왕을 쳐부술 때 남김없이 진멸하지 않는 불순종의 죄로 연결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왕이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렸다”(삼상 15:23)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행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사람의 생각과 뜻에 따라 변개되고 변질될까 두렵습니다. 믿음으로 달려가지 아니하고 인내의 싸움을 회피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동시에 기다림이 게으름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인스턴트의 시대, 컴퓨퍼 버퍼링을 가장 짧게 하려는 지금같은 시대에는 기다림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일방적으로 나의 때에 맞출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때와 주관하시는 시간에 맞추는 길밖에 없습니다.

 

기다림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기다림속에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룩한 유익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목양칼럼 [ 기다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