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5월29일,화)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45:8).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의 처지와 형편 그리고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자신있게 “이렇게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인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일들에 대하여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게 하시는가”라고 반문하기도하고 의심하면서 용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욥의 이야기를 통하여 얻어낼 수 있습니다. 욥은 생각지 못한 절망적인 일들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면을 보면 사단이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 행한 일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일어난 불행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결코 우연(by accident)이 없이 하나님의 큰 섭리속에 이루어지는 일들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권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임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1:7)”이라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할 만한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과 아픔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그의 마음과 감정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통해서 얼마든지 그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은 형들을 만나고 자기를 알리게 되었을 때 큰소리로 대성통곡하였습니다. 애굽사람과 바로의 궁중에 들릴 정도였습니다(창45:2). 또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행여나 요셉이 자기들을 죽이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들려주며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창50:17). 이러한 눈물들은 지난 세월 속에 감추어 두었던 아픔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요셉이 아픔과 절망을 가슴에 묻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오늘 본문 말씀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절대믿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애굽으로 종이 되어 팔려온 절망적인 일이나 애굽의 통치자가 된 영광스러운 일 모두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과정에 절망적인 일들을 맞이할 때 그것이 나의 잘못이든, 사단이 그렇게 했든, 나쁜 사람 때문이든, 환경 때문이든, 결국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순종, 자유함 그리고 믿음의 경지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권을 인정할 때 오로지 그분에게서 해결책과 선한 결론을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잘못한 것에 대하여는 철저히 회개하게 되고, 기도해서 해결할 문제들에 대하여는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귀신을 쫓는 것이나 질병의 치료를 위하여 간청하는 일에 강하고 담대함이 수반되지 않겠습니까?

 

결국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청구(Claim)할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니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기뻐하실 것입니다(히11:6).

 

“50:20고백”이라고 알려져 있는 창50:20에서 요셉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다시 한 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