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봇의 일편단심] (12월4일, 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왕상21:4).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성도들은 자신의 유익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비록 목숨이 좌우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나봇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왕 아합은 왕궁에서 가까운 나봇의 포도원을 사고자 했습니다. 더 좋은 포도원을 주겠다고 했고 원하면 돈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자신의 포도원은 조상들의 유산이기 때문에 결코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왕상21:4). 이 말을 전해들은 왕은 심히 근심하여 침상에 누워 식사도 아니 했습니다. 이를 본 아내 이세벨이 꾀를 내어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아합왕을 나봇이 죽은 곳에서 죽게 할 것이라고 하셨고 결국 전쟁터에서 전사케 하였습니다(왕상22:34-38).

 

나봇은 레위기 25:23의 “토지는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라는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업이요 자신이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소유인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유를 팔면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고 더 이익을 챙기는 일이 생길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나봇에게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본주의입니다. 그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왕의 청원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분명한 말씀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철저한 이행자요 실천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생명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에 있어서 어떤 손해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영원한 천국에서의 상급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셋째는 청지기적 물질관입니다. 그는 자신이 소유가 자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상들의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것으로 믿었습니다. 올바른 청지기적 자세였습니다. 청지기는 잠시 맡은 자요 그 소유권은 주인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올바른 청지기는 소유의 많고 적음, 질적인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직 주어진 것에 대한 충성이 있을 뿐입니다.

 

나봇은 레위기에 기록된 율법을 지키려다 죽었습니다. 아마 그는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그가 지킨 신앙의 바른 길은 이스라엘 역사의 기록에 올려져 있고 오늘 우리에게도 신앙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목양칼럼 [나봇의 일편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