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의 신앙] (1월5일, 금)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11:38).

 

위스콘신주에 관광지인 [블루 마운드 동굴]이 있습니다. 시카고지역에서는 북서쪽으로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저희 집에서는 2시간 40분정도)으로 중부지역에서는 꽤 알려진 곳이라고 합니다. 막내가 학교에서 2월에 여행발표를 할 차례라 하여 필요한 사진들을 만들려고 엄동설한 년초에 겸사겸사 함께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곳 지역은 “Bitter cold(살인적인 추위)”의 날들이 연말부터 연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내인을 따라 들어간 동굴은 예상보다 규모가 작았습니다. 대신 좁은 굴들을 따라 이동하는 곳들도 있어서 동굴의 묘미를 가까이서 맛볼 수 있었던 특징이 있었고 물들이 고인 공간들에는 파이프를 설치하여 필요할 때 물을 뽑아내는 장치도 보여서 습기관리를 잘 하고 있었습니다.

 

동굴의 온도는 화씨 50도정도 된다고 합니다. 밖이 혹한의 온도임을 감한하면 따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만약 거주지로 사용한다면 두툼한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장소입니다.

 

저는 동굴을 둘러보면서 초대교회 때 동굴 감옥에 갇혀 있었던 신앙인들과 핍박을 피하기 위해 동굴에 숨어 살았던 신앙인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당시의 동굴들을 가보지 못했지만 분명 열악한 환경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동굴은 사람들의 체질로는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 곳이 못됩니다. 더군다나 밀폐된 공간의 습기와 서늘함 그리고 취사할동이나 횃불등으로 인한 혼탁한 공기등은 분명 몸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동굴속에 피해서 살아야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분명한 세 가지 신앙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환경에 지배함받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뛰어넘는 그리고 오히려 그 환경을 지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조롱과 채찍질,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등을 당한 사람들의 믿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히11:36,37). 믿음의 위대한 승리자라는 의미임니다.

 

둘째는 소망입니다. 그들에게는 잠시의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은 한시적인 환경에 얽매이지 않게 하였고 오늘에 좌절하거나 뒤를 돌아보아 침륜에 빠지지 않게 하였으며 인내의 신앙경주를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의 인사가 “마라타나(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고전16:22)”였음은 최고의 소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셋째는 사랑입니다. 비가 온 후의 땅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주님과의 사랑은 더 깊어졌습니다. 불순물없는 순수한 사랑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계산하거나 불순의 의도가 없었습니다. 십자가 사랑의 의미 곧 주님의 사랑속에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이 풍성했습니다(마22:37-39).

 

핍박과 환난속에서 더욱 순수해지고 정결해지는 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히12:6). 동굴의 신앙인들을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의 신앙현장은 너무 고급화되고 엘리트화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열약한 환경속에서도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그대로 시각화되고 생활화되었던 모범을 동굴의 신앙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그 때와 비교하면 고급스러운 맨션의 신앙이지만 역설적으로 순수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잃어버린 외식과 형식의 신앙 현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칼럼 [동굴의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