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의지하여(11월27일, 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눅5:4,5).

 

예수님은 해변에 있는 군중들에게 말씀을 마치신 후에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갈릴리 호수는 밤에 고기를 잡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벽에 깊은 곳은 고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 새벽에 그물을 내리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맞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고기잡이 전문가인 베드로가 들을 때는 너무 웃기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충고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이곳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지만 같은 목수라도 상대방이 하는 일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더욱이 다른 분야는 절대로 논쟁하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목수이시면서 전문어부인 베드로에게 명령하신 것은 육신적인 직업을 뛰어넘는 영적인 세계의 질서를 깨닫게 해 줍니다.

 

예수님은 왜 깊은 데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1)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기잡이 전문가들이 볼 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보이심으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고기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이미 예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기적이었습니다.

2) 깊은 신앙생활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 시간의 깊은 곳은 고기가 없는 곳, 별 재미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 시간에 세상 사람들은 얕은 곳, 재미 있는 곳에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날에 사람들은 인스턴트, 잠시의 자극적인 삶에 너무 물들어져 있습니다. 보이는 성공과 부, 명성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Paul Tillich라고 하는 신학자는 예비적 관심(Preliminary concern), 궁극적관심(Ultimate Concern)이라는 단어를 써서 비교하였습니다. 예비적 관심은 돈, 사랑, 행복, 취미등으로 현재적인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예비적 관심에 모든 것을 겁니다. 이런 것들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들이요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의지하면 형편에 따라 울고 웃고 흔들리고 쓰러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궁극적 관심은 영원한 것, 최고의 가치, 천국에 초점을 맞추는 삶입니다. 궁극적 관심을 위해서는 현재의 형편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당장 고난의 길을 자청하는 것입니다. 당장 행복이 보장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깊은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좁은 길, 때로는 외로운 길,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길들을 기쁨으로 걷기를 원하십니다.

3) 절대순종을 가르치려 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은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합리성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힘들고 말도 안되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은 상식이 없으신 하나님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목적을 가지고 일 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을 대신하여 양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어느 미군부대가 아프리카의 외진 곳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그곳 군인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장교가 비웃듯이 물었습니다. “왜 이런 가난하고 외진 곳에 오셨습니까? 좋은 곳도 많은데 말입니다.” 그러자 선교사님이 “장교님은 어떻게 이곳에 오시게 되었습니까?” “그야 사령관이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군의 명령이라면 어느 곳에든지 갑니다.” 그러자 선교사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만군의 사령관이신 주님께서 파송한 선교사입니다. 주님께서 이곳에 가라 하셨기에 왔습니다.” 장교는 얼굴을 떨구고 더 이상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설교 [말씀에 의지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