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과 회개] (12월8일, 금)

그 때에 열 둘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마26:14-16).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은 속사도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핍박을 받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폴리캅에게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리고 회유하기에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86년 동안 예수님은 한 번도 저를 버린 적이 없으신데 어찌 내가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백하면서 자원하여 순교를 당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특히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파는 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실 때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제자들 모두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특히 가롯 유다와 베드로는 배반의 모양은 오십보 백보의 모습이지만 회개의 모양에서는 극명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가롯 유다의 배반의 동기성은 욕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니면서 재정을 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실 이 땅의 왕국에서 재무장관이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실 때마다 그는 자기의 꿈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은 30을 받고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파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돈이라도 챙겨야 하겠다는 욕심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배반의 동기성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주님 가시는 길은 어디까지라도 따라가겠다던 그 뚝심과 믿음은 온 데 간 데 없는 초라한 배반이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잘못한 것을 인정했지만 자살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만나주시고 사랑의 고백을 통하여 회개의 와 회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요21장).

 

가롯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을 통하여 오늘날에도 성도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배반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배반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배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부끄럽게 만드는 말과 행동의 배반등으로 나타남을 유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정한 회개의 자리입니다. 하루를 정리하면서 주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고 회개의 시간을 갖는다면 주님의 거룩성에 더 가까이 가는 성장과 함께 이 땅의 삶을 더욱 크리스챤답게 꾸며가게 될 것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칼럼 [ 배반과 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