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그 사랑] (12월21일, 목)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33).

자식이 아무리 죄를 짓고 반역해도 변할 수 없는 한결같은 자식향한 사랑을 다윗은 보여주었습니다. 하물며 곱게 자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엇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홍성사에서 펴낸 [주부편지]라는 책에서 윤주홍박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부모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윤박사님은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거저 고쳐주기도 하고 도와준 선행으로 제1회 서울시민 대상을 탔습니다. 이는 윤박사님이 옛날에 딸을 잃고 절망가운데 방황하다 결국 자기의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고 행한 여정의 결과인 간증입니다. 그분의 회복은 사랑의 끝자락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여기 그대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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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의사가 되기를 소원하여 이 땅의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인술로 헌신하겠노라 하나님께 서원했던 제가 막상 의사가 되어서 환자가 몰리고 돈이 벌리자 주일까지 범하는 불충한 하나님의 자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동작동에 개업을 했었는데 교통사고 환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병원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병원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려와 또 교통사고 환자로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기사인 듯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어린 아이를 안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아이를 받아 응급처치를 하려다가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찌그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아이는 바로 제 딸 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셋째 딸이었습니다.

“오 하나님” 부르짖으며 딸아이의 심장에 청진기를 대었으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찌 이리 하실 수가! 의사인 아비가 치료의 손길 한번 못 펴보고 딸을 잃어버리게 하시다니…..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하나님을 원망하며 저는 의사 가운을 벗어버렸습니다. 병원문도 닫아 버렸습니다.

눈이 떠지면 실신한 사람처럼 딸아이의 무덤을 찾는 일만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었습니다. 딸의 무덤에 내린 누이 아이를 춥게 하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 웃옷들을 벗어버리고 맨 몸으로 아이의 무덤을 껴안고 아비의 체온으로 눈을 녹여 주어야 했습니다.

이듬해 봄, 변함없는 일과로 딸아이의 무덤에 다녀오는 길목에서 열이 펄펄 나는 어린 손녀를 안고 울고 있는 가난한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저는 선배의 병원에 그 아이를 업고 가서 치료비는 제가 부담할 터이니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제 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린 아이가 먼지 쌓인 병원을 둘러보고 “아저씨도 의사야? 근데 왜 의사 옷을 안 입어? 청진기도 귀에 안대네”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오랜 만에 가운을 입고 먼지 쌓인 의자에 앉아 청진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사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그 아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었습니다.

아!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천지를 깨우는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그 힘찬 심장의 고동소리는 내가 그리도 안타깝게 그리워했던 딸아이의, 죽었던 딸아이의 심장의 고동소리였습니다.

그 아이가 사고를 당하던 날 그토록 청진기를 갖다 대어도 들리지 않던 바로 그 심장소리 말입니다. 그 고동 소리는 아비의 귀청을 찢고 아비의 심장을 때리고 아비의 죽었던 영혼을 깨우는 힘찬 고동소리였습니다. 오 하나님! 신음하는 저를 아이가 놀라 올려다보았습니다. 아! 그 말고 영롱한 눈동자 또한 죽었던 딸아이의 눈동자였습니다. 저는 소리쳤습니다.
“오 하나님! 작은 자를 돌보지 않고 세상을 따르던 저를 이제 사 깨우십니까?”

그 길로 저는 남현동의 보육원을 찾아갔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보내시었습니다. 그 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살고 있는 봉천동에 병원을 다시 세우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게 하시었습니다. 이 모든 일 위에 우리 주님 영광 받으소서!
– 윤주홍

시카고 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설교 [부모의 그 사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