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복강의 밤 (10월17일, 화)

야곱이 밤새워 기도했던 얍복강은 내 마음의 고향과 같습니다(창32장). 주님(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표현되어있는데 성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과 독대하여 씨름했던 야곱의 모습이 내가 가져야할 절박함의 모습이기를 바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죽음 앞에 서는 두려움 속에 얍복강을 건너지 못하고 거기에 머뭅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났고 밤새워 씨름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야곱의 끈질긴 애탐의 모습에 허벅지 관절을 치고 새벽에 떠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생명을 건 투쟁을 불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바꾸어 줍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응답의 도장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얍복강의 밤을 누구나 맞이합니다. 슬픔과 고통, 앞길을 알 수 없는 나락의 때,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때를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야곱이 맞이했던 밤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결국 그를 이스라엘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의 해결자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매어달려 해결받겠다는 절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어두운 밤을 통과하여 약속의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그 밤에 단 한 가지 독하게 마음에 품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필사의 각오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축복은 야곱에게 당면한 절실한 문제의 해결을 말합니다. 형 에서로부터 자신과 식구들의 죽음을 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서의 마음을 눈녹듯하게 하심으로 야곱의 기도를 현실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또한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주심으로 12지파의 조상이 되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끝이 닺는 곳에는 상상할 수 없는 부수적인 축복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1천번제를 쌓고 기도한 솔로몬 왕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셨을 때 솔로몬왕은 백성을 치리할 지혜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간구하지 않은 부수적인 응답들로 채워주셨습니다(왕상3:11-13).

씨름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한다는 자체는 기도를 응답받느냐 응답받지 못하느냐의 승패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패배를 모르시는 분입니다. 그런 그분께서 야곱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져주시는 하나님, 이길 수 없는 그분을 이기게 하시는 패배속에 승리의 역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감격적인 사랑의 역설입니다. 저는 얍복강에서 밤새워 기도했던 야곱의 고뇌와 눈물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외로움과 포기의 유혹과 한계의 싸움속에 끝까지 견디어 내었던 야곱이 있어서 좋습니다. 그가 결국은 찬란한 아침을 맞이했다는 것이 더욱 흥분되어서 좋습니다.

힘들 때 외로울 때 얍복강의 밤을 생각합니다. 도전의 밤이요, 운명의 밤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 그 밤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밤은 결코 외로운 밤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보혜사(우리 곁에 오셔서 도와주시는 분)로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더욱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응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밤을 통과하게 하실 때 우리의 인내와 절실함을 시험해보십니다. 통과의 과정은 고통이요 견딜 수 없는 것이지만 야곱처럼 견디어내고 반드시 축복을 쟁취하겠다는 사생결단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바꾸어주시면서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게 하실 것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