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희망의 노래] (12월19일, 화)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정식 수도로 인정하면서 팔레스타인들의 거센 저항과 함께 이슬람세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2000여년 동안 나라없는 민족으로 짚시의 생활을 했던 그들이 기적적으로 나라를 다시 세운 것이 불과 70년 전입니다.

 

현대사에서 가장 오랜 세월동안 고통당한 민족이 있다면 유태인일 것입니다. 전의 역사는 차지하고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나라없이 유럽에 흩어져살던 유태인들이 독일 히틀러의 나치하에서 600만명이나 학살되는 초유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독일군 수용소에 갇혔을 때 하티크바(hatikvah)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티크바는 희망 또는 소망(hope)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2천년 동안 나라없이 살았지만 그들에게는 시온과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티크바는 1891년 제 1회시온주의모임에서 찬가로 채택되었는데 역경의 세월에서 이 노래(작사: 나탈리 임베르 1886년, 작곡:사무엘 코헨)는 그들의 가슴에 소망을 품게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슬픈 마이너 음률의 곡으로 그 노래가 그들을 견디게 했습니다.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유대인의 영혼은 가슴깊이 갈망하는 한 As long as the Jewish spirit is yearning deep in the heart,

시온을 향하여 동쪽으로 눈을 돌리고 With eyes turned toward the East, looking toward Zion,

2천 년 동안의 희망을 잃지 않으리 Then our hope – the two-thousand-year-old hope – will not be lost:

우리의 땅에서 자유민이 되리라,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서. To be a free people in our land, The land of Zion and Jerusalem.

 

이와같은 희망의 노래가 있었기에 그들은 내일을 소망하며 살았고 결국 기적중의 기적으로 옛날 그들의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가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이스라엘의 국가(國歌)가 되었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소망)을 품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오늘의 환난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영원한 희망(소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소망은 이 땅에서 잠시 겪는 어려움을 능히 이기게 해주는 능력이 됩니다. 이 땅에 두는 소망은 잠시 잠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두는 소망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잠시 받는 환난을 경한(가벼운)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왜냐하면 장치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사는 기독교인들의 순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많은 신앙인들이 핍박과 박해와 환난을 통과하면서도 신앙을 지켰던 것은 이 땅 위의 소망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했고 영원한 소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롬5:3,4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말씀처럼 궁극적으로 소망을 이루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이 되십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묵상하며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곧 영원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삶입니다. 이 노래를 부를 때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어떤 환경도 이길 수 있게 도와주시고 주님 안에서 즐거움과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목양칼럼 [ 영원한 희망의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