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향한 일편단심(11월6일, 월)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유대왕 중에 특이한 왕이 있는데 아사왕입니다(왕상15:9-24; 대하14-16장). 그리고 남색하는 자들(the male shrine prostitutes)을 그 땅에서 좇아내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를 멀리하였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우상인 아세라상을 만들자 태후의 위를 폐할 정도였으니 그의 신본주의 신앙의 정도가 어찌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사왕도 치명적인 신앙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산당을 무슨 이유인지 없애지 아니했습니다. 산당은 우상들을 안치하여 우상숭배를 하는 장소입니다. 아마도 유적지처럼 남겨 놓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빈틈이 결국 신앙의 모순과 약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후에 발에 병이 들었는데 그의 태도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고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치료해주지 않으셨고 죽게 하셨습니다(대하16:12,13).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따라가던 이스라엘백성들이 우상숭배하고 음행하고 주를 시험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이야기 하면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피할 수 없는 신앙의 싸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신에게 악이 함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롬7:21). 그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습니다(롬7:22-24).

 

성경에 기록된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신앙의 싸움에서 육신에게 지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믿음 없음을 변명한다거나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이 소유하지 못한 특별한 믿음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롬7:25)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동일한 원리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1서5:5).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붙잡고 살아가야 실족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결같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눈을 결코 떼지 말아야 합니다(히12:2).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예수님을 향한 일편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