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 (5월23일, 수)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온유한”이라는 헬라어 “프라에이스”는 “고통등을 적극적으로 오래 참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온유함의 바탕에는 오래 참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어려움과 고통들을 잘 견디지 못합니다. 살기 힘들었던 시절보다 부유한 지금 오히려 자살률이 늘어나는 것은 이것의 반증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분노합니다. 잠15:1의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분노를 격동하느니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시대입니다. 부부지간에 유순한 말을 구사하지 않고 과격한 단어를 씀으로 분노를 자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칼빈은 온유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절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온유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아름다운 마음자세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스턴드의 시대, 자기 자랑, 그리고 자기 이익의 시대의 모습이 모든 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표현하고 감추는 맛의 미덕이 없습니다. 이 시대는 온유함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필요한 때임을 세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그 결과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궁극적인 승리자를 의미합니다. 국가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승리하는 나라는 피지배자의 땅을 차지합니다. 현대전에서는 처음에는 공군의 폭격, 포병대의 포사격등으로 공격하지만 있결국 최후의 결판은 보병이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기를 꽂고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궁극적인 승리자를 뜻합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힘센 자가 약자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정신까지 지배하지 못합니다. 결국 힘센 자는 약자를 잡아먹을 수 있어도 땅을 소유하지는 못합니다. 온유한 자만이 땅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심으로 이 세상을 영원히 정복하셨습니다.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좌충우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굳게 믿는 신앙으로 그 속에서 부드럽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짐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그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게 됩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온유한 자입니다. 화를 내고 투쟁해도 승자가 되지 못합니다. 온유한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가정생활에도 교회생활에도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의 여정에 온유함은 승리의 무기입니다. [유튜브]에서 85세 동갑 부부의 끝없는 싸움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만 온유하다면 끝없는 전쟁은 휴전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쟁속에서 빗발치게 퍼붓는 폭탄투하는 울창했던 산을 민등산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다시 울창하게 회복됩니다. 항변하지 않고 따지지 않는 자연은 온유함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연의 온유함은 거센 폭탄의 상흔을 치료하고 승리하게 하는 도도한 힘이 있습니다.

 

온유함은 고난의 역동성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는 것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고난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온유한 자의 특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온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온유함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예수님께 나와 그분에게 배운다는 것은 그분과 대화하며, 그분만 신뢰하며, 그분에게 맡기며, 동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온유함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할 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