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2월 12일,월)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6:2).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회복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호세아”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소망의 메시지는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사슬에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인류에게 한줄기 소망의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여전히 죄의 유혹 앞에 무기력하며, 세상 풍파 속에 허우적거립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 깊은 심령의 상처를 위로해주시고 다시 회복해주시고자 하는 마음을 “호세아”라는 이름과 본문에 표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를 살리시며”라고 하는 단어에 하나님의 회복 방법과 기대감 그리고 뜨거운 열정이 숨겨있습니다.

 

“살리시며”의 기본형 “살다”는 히브리어“하야”로서 “생존하다(창12:13), 부활하다(왕상17:22), 소생하다(겔37:5)”는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부흥(Reviva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흥은 단순한 교인의 숫자적인 증가의 의미도, 성공의 척도도, 부요함의 의미로도 설명할 수 없는 궁극적으로 생명의 변화, 생명의 소생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물론 생명의 변화로 인한 현상이 교회의 숫자적 현상으로 당연히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따라오는 결과들이지 본질적인 부흥의 정의는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혼돈을 없애기 위해 영적부흥, 육적부흥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히브리어의 본질적인 출발은 영적부흥입니다.

 

  1. A. Torrey 목사님(1856-1928)은 1세기 전에 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How to pray)]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지만 진정으로 부흥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흥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속에 부흥은 교회들 안에서 교인과 수입과 명성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진정한 부흥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의 영이 실제와 능력 안에서 부어졌을 때, 헌신된 크리스챤의 한 부분으로 영혼들을 찾게 됨과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생활의 극단적인 변화(a radical transformation)를 가져온다. 만약 이러한 것이 부흥이라는 것을 안다면 교회의 진정한 부르짖음은‘오 하나님, 부흥을 갖고자하는 것에서 우리를 멀리하게 하옵소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진정한 부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더 이상 생명력이 없는 신앙, 앙상한 뼈만 남은 의식적이고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신앙,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 있는 풍토장한 무덤같은 신앙의 모습에 대하여 하나님은 깊은 가슴 아프심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계시기에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하여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살리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미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의 회복, 그리고 생명력 있는 신앙으로의 회복,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흥의 능력이요 열매인 것입니다(겔11:19).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 풍랑속에 있는 우리에게 생기를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설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중에서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