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고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1월2일, 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2:16).

 

뉴저지에 계신 류목사님께서 신년인사차 전화를 해 오셨습니다. 신학교 때 저의 강의들을 들었던 학생이었는데 범사에 모범이었고 탁월한 실력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속에 목사가 되어서 귀한 교회를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는 분입니다. 아내 최전사님도 그 신학교를 함께 졸업하여 교회에서 아름답게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그간의 소식을 나누던 중 충격적이고 신선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속한 교회가 교단에서 탈퇴하여 지난 주일부터 다른 교회건물을 빌려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탈퇴이유는 교단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그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교회는 휼륭한 자체 교회건물을 가지고 있는 뉴저지에서는 중대형 교회에 속합니다. 그 교단에서는 개교회의 건물재산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성도님들이 피땀 흘려 구입하여 증축한 교회지만 탈퇴하면서 교단에 교회건물을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큰 희생과 손해를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결단과 순교적 발걸음이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었고 이 땅위에 이런 신앙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동성애에 대한 것은 미국교단내에 오래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큰 교단들 중에 이미 동성애를 교단법적으로 인정하는 교단이 있고 어느 교단은 인정하려는 모양새를 이미 갖추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찬반이 대등하게 나뉘어진 교단은 도리없이 깊은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교회들은 동성애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험난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갈라디아서를 묵상하면서 사도바울의 눈부신 선구자적 희생의 역할을 보았습니다. 대사도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잠시 망각하고 외식하는 모습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책망한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이를 통하여 할례(결국 율법)을 통하여 구원받는다는 주장들을 무력화시키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었고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이러한 신앙고백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그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다른 기둥같이 쓰임받는 사도들도 율법주의 구원관을 주장하는 크리스챤들에 대하여 강한 발언을 하지 못했습니다. 관계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관계성에 지배를 받습니다. 친한 관계의 사람들에 대하여 매정하게 책망하기 쉽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같은 편이 되어줍니다. 전체 분위기가 율법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반대편에 선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선택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진리의 길을 타협하지 않고 외쳤고 실천했고 걸어갔습니다. 사도바울의 타협하지 않는 자세는 가히 순교자적인 것이었고 또한 이러한 바울을 선택하셨던 주님의 이유를 감탄하여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변질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말씀도 환경에 따라 변화되어 해석되고 적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사를 통하여 순수한 말씀 그대로의 의미가 세대가 바뀌면서 변색될 수 있음을 얼마든지 보아왔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은 없습니다.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있어도 오직 예수님을 통한 구원일 뿐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죄라 한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에서 타협할 수 없는 죄일 뿐입니다. 조직과 환경과 세대 그리고 세상의 풍습이 면죄부를 줄 수는 없습니다.

 

참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해야하고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조롱과 멸시 앞에 굳건하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따라 산다는 것은 때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아픔과 인내의 신앙여정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타협하지 않고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