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시험이 들었을 때](12월1일, 금)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19:4).

 

기대감이 크면 상실감도 큽니다. 의지하는 것이 크면 배신감의 아픔은 큽니다.

 

하나님께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 자신에 대하여 돌아보기보다 하나님께 분노할 경우가 있습니다.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신앙인들이 이럴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불의 사자였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을 멸했습니다(왕상18장). 그러나 이세벨 여왕의 “죽여버리겠다”는 전갈을 받고 혼비백산 도망한 후 하나님께 “죽여주십시오.”라고 대항하였습니다(왕상19장).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은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으로 나타납니다. 적극적인 실망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 버립니다. 소극적인 실망감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유지하되 간구나 교제의 정도가 약해짐으로 나타납니다. 무언의 시위요 타협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이 불순종의 결과로 치달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절대권자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이 틀리다고 해서 하나님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실수하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시험, 상처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해보고 그분의 방법론과 나 자신을 냉철하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의 줄을 결코 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계획이 특별하게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긴 안목을 보시지만 나의 안목은 짧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물과 불을 통과할 때 사랑하는 자는 채찍질하신다는 하나님의 아이러니칼한 사랑의 손길을 이해해야만 합니다(히12:6). 그러기 때문에 낙심은 금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향하신 뜻을 이루시고자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가장 최고의 것으로 준비하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자존감의 포기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은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십자가에 독생자를 버리시고 인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을 용서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와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합니다. 더 악착같이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임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목양칼럼 [하나님께 시험이 들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