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크신 사랑](12월25일, 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23, 7:14인용).

 

성탄절기가 되면 분주한 느낌이 듭니다. 차분히 묵상하며 성탄절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보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성탄절은 성자가 인간의 몸을 빌리셔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요3:16은 성탄의 배경에 하나님의 한량없는 크신 사랑이 작용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크게 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영원히 멸망받을 존재성이라는 것이 첫 번째요, 영원히 사는 길을 얻을 방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이러한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크신 사랑이 있으시기 때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특별법인 사랑의 법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게 하신 방법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법만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드리고 이해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탄생의 방법으로 사람의 몸을 빌리셨다는 것이 이해불가한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뚝딱 육신으로 둔갑해서 오시면 논쟁도 없는 간단한 일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서는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오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셨습니다.

둘째는 유대인의 최고의 법인 율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처녀의 몸에 잉태되었다는 것은 율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신명기 22장 23,24절의 처녀가 임신한 것에 대한 조항이 있습니다. 다른 남자와 합의하에 한 것이거나 강제적으로 강간을 당하여 임신한 것 둘 중의 하나로 판명되어야 합니다.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은 남자와 함께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일 경우 약혼자는 결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셋째는 과학적으로 여자가 남자없는 임신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동정녀의 몸을 빌리셨지만 남자없는 대신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신 것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요 자연의 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잉태에 대한 설명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고 말함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자연의 법을 뛰어넘는 역사가 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이 잉태는 세상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의 세 가지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류를 향해 가지신 크신 사랑의 발로임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법이라는 명제아래서만 설명 가능한 것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앞에 설치된 “The National Christmas Tree” 점등식 후에 행한 성탄 연설에서 “Merry Christmas, 우리의 주님이시오 구원자인 예수님을 찬양”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동안 크리스챤 국가인 미국의 대통령들이 신앙의 노선을 불확실하게 함으로 크리스챤 국가의 이미지가 많이 약해진 감이 있습니다. 이러할 때 세계 최고의 지도자격인 미국의 대통령의 “A very Merry Christmas!” 고백은 미국 크리스챤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자신의 크리스챤의 자리를 확실히 하면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을 존중해주는 그의 연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성탄절기를 맞이해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크신 사랑의 결정체가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여야 하겠습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설교 [성탄속에 있는 사랑과 순종] 중에서

[부모의 그 사랑] (12월21일, 목)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33).

자식이 아무리 죄를 짓고 반역해도 변할 수 없는 한결같은 자식향한 사랑을 다윗은 보여주었습니다. 하물며 곱게 자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엇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홍성사에서 펴낸 [주부편지]라는 책에서 윤주홍박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부모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윤박사님은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거저 고쳐주기도 하고 도와준 선행으로 제1회 서울시민 대상을 탔습니다. 이는 윤박사님이 옛날에 딸을 잃고 절망가운데 방황하다 결국 자기의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고 행한 여정의 결과인 간증입니다. 그분의 회복은 사랑의 끝자락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여기 그대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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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의사가 되기를 소원하여 이 땅의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인술로 헌신하겠노라 하나님께 서원했던 제가 막상 의사가 되어서 환자가 몰리고 돈이 벌리자 주일까지 범하는 불충한 하나님의 자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동작동에 개업을 했었는데 교통사고 환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병원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병원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려와 또 교통사고 환자로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기사인 듯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어린 아이를 안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아이를 받아 응급처치를 하려다가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찌그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아이는 바로 제 딸 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셋째 딸이었습니다.

“오 하나님” 부르짖으며 딸아이의 심장에 청진기를 대었으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찌 이리 하실 수가! 의사인 아비가 치료의 손길 한번 못 펴보고 딸을 잃어버리게 하시다니…..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하나님을 원망하며 저는 의사 가운을 벗어버렸습니다. 병원문도 닫아 버렸습니다.

눈이 떠지면 실신한 사람처럼 딸아이의 무덤을 찾는 일만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었습니다. 딸의 무덤에 내린 누이 아이를 춥게 하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 웃옷들을 벗어버리고 맨 몸으로 아이의 무덤을 껴안고 아비의 체온으로 눈을 녹여 주어야 했습니다.

이듬해 봄, 변함없는 일과로 딸아이의 무덤에 다녀오는 길목에서 열이 펄펄 나는 어린 손녀를 안고 울고 있는 가난한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저는 선배의 병원에 그 아이를 업고 가서 치료비는 제가 부담할 터이니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제 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린 아이가 먼지 쌓인 병원을 둘러보고 “아저씨도 의사야? 근데 왜 의사 옷을 안 입어? 청진기도 귀에 안대네”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오랜 만에 가운을 입고 먼지 쌓인 의자에 앉아 청진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사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그 아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었습니다.

아!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천지를 깨우는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그 힘찬 심장의 고동소리는 내가 그리도 안타깝게 그리워했던 딸아이의, 죽었던 딸아이의 심장의 고동소리였습니다.

그 아이가 사고를 당하던 날 그토록 청진기를 갖다 대어도 들리지 않던 바로 그 심장소리 말입니다. 그 고동 소리는 아비의 귀청을 찢고 아비의 심장을 때리고 아비의 죽었던 영혼을 깨우는 힘찬 고동소리였습니다. 오 하나님! 신음하는 저를 아이가 놀라 올려다보았습니다. 아! 그 말고 영롱한 눈동자 또한 죽었던 딸아이의 눈동자였습니다. 저는 소리쳤습니다.
“오 하나님! 작은 자를 돌보지 않고 세상을 따르던 저를 이제 사 깨우십니까?”

그 길로 저는 남현동의 보육원을 찾아갔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보내시었습니다. 그 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살고 있는 봉천동에 병원을 다시 세우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게 하시었습니다. 이 모든 일 위에 우리 주님 영광 받으소서!
– 윤주홍

시카고 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설교 [부모의 그 사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