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하심 – 사순절묵상3 ](2월23일,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예수님을 묵상할 때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면서도 성경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른 흔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 그 자체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증명하셨고 역사속에서 참 성도들에게 증명하셨으며 지금도 믿는 자들에게 증명하고 계십니다. 만약 이 약속이 없었다면 우리의 신앙은 허공을 가르는 추상적인 개념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살아계신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시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함께 교제를 나누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하나님은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사7:14인용, 마1:23)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자신의 전인격은 구원받은 자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입니다. 요1: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는 구약의 성막(Tabanacle)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통하여 백성들 가운데 거하셨던 것처럼 오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막16:20절을 묵상하다가 예수님은 “함께 하심”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한글 번역은 이렇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때에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확실히 말씀을 증언하시니라.” 잘 풀어보면 제자들이 나가서 두루 말씀을 전파할 때 그 사역을 예수님께서 함께 하셨고 표적이 나타나게 하셨으며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증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주체가 등장합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이 사역할 때 예수님은 보조자가 아니라 주체가 되셨습니다. 이렇게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예수님이 아니시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루신 것을 확실히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계심을 그들은 확인했고 그들 중에 일어난 표적들이 주님께서 행하신 것임을 세상에 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역의 주체를 예수님이라고 단언하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 제자들을 떠나셨지만 영적으로 합력사역을 하시고 계심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대하여 신실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비록 눈에 보이는 것 없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예수님은 분명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만나의 글”에 실린 이찬수 목사님의 글 중에 삼손이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보통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때 어떤 신령한 힘이나 분위기등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압도하는 힘 때문에 쓰러지거나 입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이라는 단어보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는 단어를 더 중요하게 사용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함께 하심”의 실제 증거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특징은 신실하심(faithfulness)입니다. 이는 그분의 전인격이십니다. 예수님은 실수하시거나 실언하시지 않습니다. 인생의 길에 말로만 끝나는 허수의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고백하고 인정하며 확인하는 과정이 사순절기간동안 더 깊이 누리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함께 하심- 사순절묵상3]

 

[ 그 이름 예수 –사순절묵상 2 ] (2월 21일, 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은 평범하면서도 그 의미가 깊습니다.

 

사람의 이름은 관계성에서 그 의미를 달리 만듭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나와 상관이 없다면 그 이름은 나에게 깊은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이와 반대로 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은 세상의 어떤 이름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의미를 주기도 합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을 때 그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습니다(삼하19장). 다른 사람들에게는 잊혀질 이름이요 별 의미없는 이름일지 몰라도 다윗에게는 가슴에 깊이 묻혀진 이름입니다.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의 이름이었습니다. 뉴저지주에는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지금은 유명한 학교가 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기도원(수련원)이었습니다. 여러 성전 중에 하나가 “요셉성전”이라고 이름지어져 있는데 원장이신 신장로님 내외분이 청년 때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버린 아들의 이름을 그 성전에 붙인 것입니다. 신장로님으로부터 아들의 이름인 요셉을 따서 그 성전에 명명한 사연을 듣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들에게 요셉이라는 이름은 남은 평생동안 가슴에 새겨진 아픔과 그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슴에 품은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이 땅에 독생자로 보내시면서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짓게 하셨습니다(마1:21). 독생자에게 주신 이름 예수의 의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그 이름 자체가 의미이고 진리이며 능력이고 권세가 되셨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 생각이 자주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새벽에 나가셔서 밤늦게 들어오시는 행상을 하셨습니다. 60년, 70년대 그 힘들었던 서울 생활의 고단한 여정은 과부인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도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어머니의 눈물과 아픔의 흔적이 오직 자식들을 위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의 발자취는 자식을 위한 순례길이었습니다.

 

사순절의 핵심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힘에 지나도록 사역하신 것, 고난의 여정을 통과하신 것,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 죽음을 박차고 부활하신 것등 모든 것들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그 관계성에서 오는 의미는 세상과 바꿀 수 없는 지고하고 숭엄한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분과 나와의 관계성 때문입니다. 나의 죄, 나의 저주, 나의 죽음, 나의 영벌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지불하셨습니다. 나와 관계 있는 분, 나와 끊을 수 없는 관계의 하나님, 그분 때문에 오늘 이 땅의 삶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을 깊이 묵상하며 찬양할 때 가슴 떨리는 감격과 감사의 세계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찬202장 3절 “구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리. 영원히 찬양할 나의 노래 예수의 이름이 귀하도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니 나는 참 기쁘다.”의 가사는 이런 감격을 노래한 것임에 놀랍습니다.

 

이 땅의 순례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언제 주님이 우리를 맞으러 오실지 이 또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보장받았으며 이 땅의 삶동안 천국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 예수 때문에 누리고 있는 현재의 은혜 그리고 앞으로 누릴 천상의 은혜를 생각하면 사순절 묵상의 의미가 벅차기만 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그 이름 예수 – 사순절 묵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