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십자가 ](3월 30일, 금)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19:30).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약 800m 거리를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셨습니다. 이 길을 라틴어로“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고난의 길)” 라고 부릅니다. Via는 길, Dolorosa는 슬픔, 고난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시간으로 오전 9시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6시간동안 처참한 고통가운데 계셨습니다. 운명하시기 전에 십자가에서 7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이를 가상칠언(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하는 말은 진실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언의 효력을 법정에서는 인정합니다. 예수님의 가상칠언은 기독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골고다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또한 그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불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구원을 얻습니다. 영원한 지옥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의 삶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골고다 십자가의 의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났던 놋뱀의 사건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에 하나님께 원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자 불뱀들을 보내셔서 백성들이 물리고 죽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급히 회개하여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명대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 물린 자마다 쳐다 볼 때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골고다 십자가를 미리 상징해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골고다의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으면 모두가 멸망을 받습니다. 많은 종교가 있어도 그것에는 골고다의 십자가가 없습니다. 다른 종교 속에 많은 가르침이 있어도 그것에 십자가가 없기에 멸망받는 가르침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미 마귀라는 불뱀에 물려서 자신도 모르게 멸망의 길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오직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생명을 받고 살아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셨고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고난도 이루셨고, 사탄의 패배를 이루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 길만이 살 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시카고 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 성전정화- 고난주간묵상 ]( 3월28일, 수)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들러 엎으시며(11:15).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가장 먼저 하신 것이 성전정화(성결)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묵시로 알려주고 계십니다.

 

유대민족의 중심은 성전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바벨론과 바사의 포로생활에서 귀국했을 때 그들은 가장 먼저 성전을 보수했고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그들은 온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되었을 때에도 성전을 대신할 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큰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성지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라고 하는 명제 앞에 그들은 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이 사는 길, 개인과 가정이 사는 길은 주님에 대한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 가장 중요시 여겼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또한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거룩해야할 성전, 예배드리는 성전이 세상방법들로 가득 차 있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사야56:7과 예레미야 7:11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강도의 소굴로 변한 성전을 책망하신 것은 곧 강도의 신앙으로 변한 유대민족에 대한 책망이요 또한 오늘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인본주의로 변했고, 백성들도 예배에 대한 거룩성이 사라져 편리한 제사(예배)를 위해 성전에서 헌물을 사고파는 형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강도의 소굴로 변한 것은 아닌지요.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강도와 흡사한 것은 아닌지요. 예배에 대한 무관심, 예배에 대한 소홀성, 그리고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아니라 사사롭고 오락적인 예배의 모습은 아닌지요.

깊이 묵상해보면 주님께서 예언적으로 하신 말씀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전6:19은 “너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인데 그 중심인 마음이 많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거룩해야 할 우리의 신앙의 중심이 슬프게도 세속화되고 더러운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자신의 성전정화를 준엄하게 요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임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주간동안 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화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