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통하는 자 – 사순절묵상10 ](3월19일, 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5:3).

 

예수님의 팔복 중에 두 번째가 “애통하는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시대에 절실한 우리의 마음 자세를 표현하고 계십니다.

“애통하는 자”라는 원어는 헬라어로 “호이 펜둔테스”로서 죽은 사람에 대하여 애도하는 사람 또는 자신과 타인의 죄에 대한 결과를 탄식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타인의 죄에 대하여 탄식하며 회개하는 자를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찢기를 원하십니다. 죄로 물든 우리의 마음을 회개의 눈물로 씻지 않고는 결단코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치유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단어 “미투(Me too)”는 “나 역시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고발형태의 문장입니다. 가해자를 드러냄으로 잘못의 지탄을 받게 하지만 정작 그 가해자가 얼마나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또한 피해자의 정신적 상처가 온전히 치유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십자가의 용서가 없이는 상처난 마음이 치료받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성폭행이 알려지는 순간 가해자는 수치심과 괴로움으로 어디로 도피하든지 자살의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상스럽게도 상처와 아픔을 움켜지고 성폭행을 알렸던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처럼 언론의 뭇매를 맞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선도가 아니라 자기 이익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작태가 한심스럽기까지 합니다. 한국에서 작금의 일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의 연속입니다. 근본적인 치유책이 없는 더 큰 상처들만 남기는 정죄, 자기파괴, 복수의 소용돌이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예수님의 “애통하는 자”는 이 때에 너무도 필요한 예언적인 경고이며 간절한 부탁이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아이투(I too)” 운동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 역시 죄를 지었습니다.”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회개와 애통의 운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뜻은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가기 위해서는 단호히 죄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죄를 끊겠다는 단호한 자세는 곧 회개입니다. 애통하는 것은 눈물로 죄사함을 간청하는 회개의 뼈아픈 농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위로”라는 말은 “곁으로”라는 단어와 “부른다”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고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애통할 때 하나님은 죄사함의 위로를 주십니다. 동거하는 위로를 주십니다. 세상을 당당하고 승리롭게 살아가는 위로를 주십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료받고 소망의 내일이 보장되는 위로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위로자가 되심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요14:16).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며 위로하실 것이니 찬양을 올립니다(계7:17). 오늘날 우리에게 애통의 마음이 너무 무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양심이 화인맞은 자처럼 추악한 우리의 죄에 대하여 예민한 부담감과 양심의 괴로움이 사라지고 회개할 줄 모릅니다. 남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나의 눈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이는 애통의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찢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 있는 애통의 심령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인들이 애통하는 회개의 눈물을 원하십니다. 이를 통하여 세상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안타까와할 수 있고 결국은 주님과 깊이 거룩한 교제와 동행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죄에 대하여 마음을 찢고 애통하는 것이 남을 향하여 손가락질만 하는 세상, 분열과 아픔을 극대화하는 이 사회에 교회와 성도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며 치유책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심령이 가난한 자 – 사순절묵상9](3월16일, 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팔복에 관한 말씀은 많은 가르침 중에 신앙인의 심령에 가장 필요한 마음자세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는 금식기도의 횟수도 줄어들고 금식을 해도 그렇게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창 젊었을 때는 금식기도동안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이 생각이 나는지 기도에 집중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금식하는 중에 너무 배가 고파 작정한 날보다 일찍 끝내고 기도원의 음식점에서 죽과 동치미를 시켜 먹었습니다. 금식이 끝나면 먹어보겠다고 작정했던 음식이었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두 번을 연속해서 사 먹었습니다.

 

대학생 때 학교 근처에서 하숙생활을 하는 중에 상한 음식을 먹고 큰 배탈이 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거의 1년을 위장병으로 고생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야 할 경우도 있었습니다. 몸이 아프다보니 한창 준비하던 고시공부에도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일로 금식기도원에 자주 올라가 하나님께 매달리는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받고 튼튼한 위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계획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식사시간이 되어갈 때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은 육체가 건강하다는 징조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영적인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을 때 그것을 채우기 위해 전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팔복의 말씀 중에 첫 번째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 자세를 의도하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은 “심령이 갈급한 자, 배고픈 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다”는 속담은 배고픈 자에게는 모든 것이 맛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은 말씀도 달고 찬양도 은혜로우면 기도의 시간이 즐겁습니다. 신앙에 열심이 있고 헌신이 저절로 생깁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관계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도 뜨거운 사모함이 생깁니다. 이러한 신앙인을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렘29:1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당연히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행 1:3)에 대한 것을 여러 번 선포(4복음서에 40번 이상)하셨습니다. 주기도문 중에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믿는 자에게 나타날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배고픔입니다. 육체가 건강하면 하루에 몇 번씩 육체적 배고픔을 느끼고 먹은 음식을 잘 소화하여 더욱 강건해지듯이 영적인 배고픔을 느낄 때 말씀에서 금을 캐고 기도에 힘을 얻고 영적으로 강건한 근육을 소유하게 됨으로 세상의 유혹과 싸움에서 능히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한국에는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에 대한 근절과 예방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픔과 상처의 드러냄과 선도의 목적이 진정한 치료와 예방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미움과 복수의 연쇄작용이 될까 염려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아가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세태에 예수 믿는 믿음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되고 심령이 가난해지는 은혜의 물결 속에 있을 때 육체의 소욕을 절제하며 아름다운 신앙의 덕을 이루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가르침이 이토록 감동되고 은혜가 되는 것은 점점 세속화되는 신앙생활에 대한 진정한 회개의 모습일 것입니다. 심령이 배고파 신앙의 사모함이 더욱 회복되는 사순절 기간의 묵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 사순절묵상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