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에 역사했던 시편23편](5월25일, 금)

여호와는 나의 목사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23:1,2).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섬세하고 살아역사하는 것인가는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뉴저지주에서 교회를 담임하면서 초창기 어려운 기간이 있었습니다. 부흥중이던 교회 사역에 예상치 못한 심각한 일들이 다가왔고, 신학교에서의 학위과정도 끝을 맺지 못하는 충격과 아픔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마음에 심한 스트레스와 중압감 그리고 우울증등이 걷잡을 수 없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평소에 믿음에 관하여는 굳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태풍도 이길 것 같았던 위풍당당함도 어느 순간에 사라져버렸고 그 대신 나약함과 실패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외적으로 보면 규칙적인 신앙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새벽제단, 금요예배, 주일예배등 교회의 정상적인 행사들은 쳇바뀌처럼 잘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껍데기의 모습이었습니다. 일상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내면의 고통은 순서가 어긋난 것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잠을 청해도 이것저것 많은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제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인가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기도실에 들어가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찬송가들을 부르면서 가사들을 암기하며 묵상했습니다. 이상스럽게 시편 23편을 암기하면서 묵상하고 싶어 그렇게 하였습니다. 다른 여분의 어떤 생각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개역한글).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사실 앞에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한량없는 은혜와 평강을 느꼈습니다.

 

자기 생명을 걸고 양떼를 돌보는 목자. 쉴만한 초장으로 인도하여 먹을 것과 쉬임을 공급하고,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목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지금의 나의 형편)를 지날 때 보호하시고 안위하시는 목자.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셔서 높여주시며 잔이 넘치게 하시는 목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에 따르도록 역사하시며 영원한 천국의 집에 거하게 하실 목자.

 

그 목자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침상에 누워서도 시편23편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다른 잡념과 생각들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그 말씀들만 고백하며 묵상했습니다.

 

참으로 표현하기 힘든 평안의 체험 그리고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샘물처럼 솟아나왔고 염려와 근심을 주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단잠을 자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마음의 질서가 잡히게 되면서 날마다의 삶이 마치 푸른 초장에 있는 것처럼 평안해졌습니다.

 

행여나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의심, 조급함과 불안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그리고 때로 이런 일들로 불면의 밤이 다가올 때 시편23편을 조용히 암기하며 묵상해보십시오. 살아있는 말씀의 풍경 속에 들어가 그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의 목자와 함께 거하는 은혜의 체험을 분명히 하게 될 것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온유한 자 (5월23일, 수)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온유한”이라는 헬라어 “프라에이스”는 “고통등을 적극적으로 오래 참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온유함의 바탕에는 오래 참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어려움과 고통들을 잘 견디지 못합니다. 살기 힘들었던 시절보다 부유한 지금 오히려 자살률이 늘어나는 것은 이것의 반증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분노합니다. 잠15:1의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분노를 격동하느니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시대입니다. 부부지간에 유순한 말을 구사하지 않고 과격한 단어를 씀으로 분노를 자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칼빈은 온유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절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온유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아름다운 마음자세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스턴드의 시대, 자기 자랑, 그리고 자기 이익의 시대의 모습이 모든 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표현하고 감추는 맛의 미덕이 없습니다. 이 시대는 온유함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필요한 때임을 세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그 결과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궁극적인 승리자를 의미합니다. 국가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승리하는 나라는 피지배자의 땅을 차지합니다. 현대전에서는 처음에는 공군의 폭격, 포병대의 포사격등으로 공격하지만 있결국 최후의 결판은 보병이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기를 꽂고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궁극적인 승리자를 뜻합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힘센 자가 약자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정신까지 지배하지 못합니다. 결국 힘센 자는 약자를 잡아먹을 수 있어도 땅을 소유하지는 못합니다. 온유한 자만이 땅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심으로 이 세상을 영원히 정복하셨습니다.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좌충우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굳게 믿는 신앙으로 그 속에서 부드럽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짐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그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게 됩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온유한 자입니다. 화를 내고 투쟁해도 승자가 되지 못합니다. 온유한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가정생활에도 교회생활에도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의 여정에 온유함은 승리의 무기입니다. [유튜브]에서 85세 동갑 부부의 끝없는 싸움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만 온유하다면 끝없는 전쟁은 휴전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쟁속에서 빗발치게 퍼붓는 폭탄투하는 울창했던 산을 민등산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다시 울창하게 회복됩니다. 항변하지 않고 따지지 않는 자연은 온유함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연의 온유함은 거센 폭탄의 상흔을 치료하고 승리하게 하는 도도한 힘이 있습니다.

 

온유함은 고난의 역동성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는 것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고난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온유한 자의 특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온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온유함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예수님께 나와 그분에게 배운다는 것은 그분과 대화하며, 그분만 신뢰하며, 그분에게 맡기며, 동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온유함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할 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