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묵상 ](2월19일, 월)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로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4:1-2)

 

지난 발렌타인 데이(2월14일)는 기독교력으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속죄일)”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날부터 시작해서 부활주일(올해는 4월1일) 전 토요일까지 주일을 뺀 날들이 40일인데 이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재의 수요일에는 전 해의 종려주일(Palm Sunday)에 사용했던 종려나무 가지로 만들어 집의 벽에 장식했던 십자가를 교회에 가지고 와서 불태운 후 그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로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을 묵상하며 고난주간의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을 영어로는 Lent(렌트)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단어로 “봄”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거꾸로 계산하여 주일을 뺀 40일간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내는 절기로 지켜왔습니다.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의미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을 때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출34장).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한 후에 40일년동안의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신8장). 예수님께서 40일동안 금식기도하신 후에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시기도 했습니다(마4장).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40일을 이 땅에서 보내셨습니다(마28장). 이처럼 40이라는 숫자는 고난의 여정, 승리의 여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실제적으로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신 은혜를 묵상하는 기간의 의미가 그 핵심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님들은 크리스챤이라는 이유 때문에 갖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고 그리고 순교의 피를 흘린 분들도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주님의 고난과 승리가 그대로 체험되는 신앙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성찬식과 금식은 참으로 중요한 신앙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참다운 회개를 통하여 신앙을 점검하고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갔으며 금식을 통하여 마음을 지배하는 세상적인 찌꺼기를 제거하였습니다. 오락과 세상적인 즐거움들 그리고 음식까지도 절제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엄격한 금욕적인 면이 강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기가 지나면서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신앙의 절제와 회개와 그리고 십자가의 묵상은 사순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순절기간을 신앙의 무디어진 칼을 갈고 신앙의 푯대를 새롭게 정리하는 수련기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의도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바라봄으로 우리의 현 위치를 깨닫고, 벗어난 궤도를 수정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다운 신앙의 자세와 방향을 정립하는 기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점검과 도약을 위해서는 특별한 집중된 훈련기간이 필요합니다. 사순절기간은 이를 위해 준비된 아름답고 의미있는 훈련기간임이 틀림 없습니다.

 

사순절기간동안 마음의 절제, 말씀의 묵상 그리고 깊이 있는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께 좀 더 가까이, 좀 더 그분을 배우고 이해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점검하고 새롭게 회복하며 강화시키는 귀한 은혜의 기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 사순절묵상 ]

[두 마음을 품은 자](2월 14일, 수)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10: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를 “속이는 자”라고 원문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며 공경하는 척 하면서 속마음과 행동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사29:13), 그래서 하나님을 속이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자신들의 신앙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 항상 하나님께 책망과 심판, 호된 경고를 받는 민족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볼 때는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처럼 느껴지지만 실제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여전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우상숭배를 떠나지 않은 숨겨진 모습이 강했습니다. 이것은 두 마음을 품은 자, 속이는 자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것은 숫자상으로는, 하나님 50% + 우상숭배 50% 로 표현할 수 있어서 언제든지 하나님쪽으로 기울어지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섞어진 자체는 순수함을 잃은 것이요 하나님 앞에 변명할 수 없는 죄입니다.

 

오늘날 겉으로는 신앙이 그럴싸해도 속을 보면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자식들의 대학입학, 성공의 척도, 결혼 등을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신앙의 부모들이 많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잘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마음을 품은 자신의 모습을 가볍게 취급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호크마 주석서에는 두 마음을 품은 신앙인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세상적으로 사는 것, 주일 성수에 몰두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겉으로는 헌신적으로 보이지만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자비를 맺지 못하는 것, 실천없는 이론뿐인 명목주의, 알맹이 없이 형식만 내세우는 형식주의,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면서 실제는 재물을 획득하고 그것을 얻는 데 모든 정력을 바치는 태도가 두 마음을 품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야고보는 기도할 때에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약1:6-8).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의심이 1%만 있어도 99%의 믿음은 일하지 못함에 대한 경고입니다.

 

예수님은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 두 마음을 품은 것은 이미 하나님 앞에 죄악으로 가득 찬 마음임을 지적하고 계십니다(마6:24).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을 때 “다하여(with all)”라고 하는 의미가 하나님 한 분 만에게 온전한 100%의 순도높은 순종과 믿음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목양칼럼 [ 두 마음을 품은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