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브로디도] (12월7일, 목)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2:25).

 

 

주위에 좋은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특별히 깊은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사역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많다면 더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귀한 동역자들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의 서신서들을 보면 감동적인 인간관계를 읽게 됩니다. 특히 빌립보서 2:25-30절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에바브로디도에 관한 이야기는 깊고 특별한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사도바울 자신이 다른 동역자들에게 먼저 귀한 모범이 되고 좋은 영적인 영향력을 끼쳤기에 얻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같은 좋은 동역자를 붙여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사도 바울처럼 동역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크리스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빌2:30은 읽으면 읽을수록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서속에는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예수님 안에서 누려야 할 은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역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는 성도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멀리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찾아가 일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대표로 보내어 바울을 돕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에바브로디도는 자기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주의 종 사도바울을 충성을 다해 섬김으로 다른 사람들이 대신하지 못하는 부족함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무슨 병인지는 모르나 죽기에 이를 정도의 중병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쳐주심으로 그 은혜와 간증을 나누게 하려고 사도 바울은 그를 빌립보에 급히 보내게 되었습니다(빌 2:28).

 

이처럼 에바브로디도는 중병에 걸렸음에도 주의 종의 사역을 돕는 일에 생명을 걸고 헌신했습니다. 이런 희생의 헌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에서 나온 것임을 30절에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라고 기록한 것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의 삶의 중심, 그의 신앙의 바탕, 그의 인생과 사역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뜨거운 열정, 예수님과 깨뜨릴 수 없는 사랑의 관계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배운 것이었고 그를 닮아가는 신앙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주의 종을 섬겼던 에바브로디도같은 신앙의 모습은 오늘 우리 모든 신앙인들이 가슴속에 새겨보아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에서의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섬김이 무너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칼럼 [ 에바브로디도 ]

 

[새로운 피조물](12월6일, 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일본의 여자 변호사로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남아”라는 자서전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오히라 미쓰요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저는 그녀의 자서전을 읽지 못했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때 인생의 허무함 때문에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정신적인 혼돈상황에 있었습니다. 결국 폭주족과 어울리는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16살 때에는 야쿠자 두목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부하들에게 따돌림을 받게 되자 그녀는 등에 문신을 새기고 조직원이 되려 모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인생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결혼 6년 만에 이혼하고 오사카 술집에서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가는 기가막힌 인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의 친구 분을 만나게 됩니다. 눈물나는 꾸중을 듣고 술집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학교 중퇴인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공부하여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방송통신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94년도에 합격하게 되었고 문제 청소년들을 변론하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누구든 과거는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험난하고 소망없는 인생에 눈물나는 도전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로 트라우마(Truama)를 겪습니다. “트라우마”란 뜻은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정신적인 상처를 만들어 정신적외상을 가진 상태“를 말합니다. 정신적 충격의 기억이 어떤 비슷한 사건을 만날 때 돌출됩니다. 트라우마에 얽매이면 정도의 차이일 뿐 정신적 장애인으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과거의 실패, 사람과의 상처, 반복되는 것 같은 안좋은 일들, 좋지 못한 추억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과거에 포로가 되어 살므로 더 이상 미래도 소망도 없습니다. 과거에 얽매이게 하는 것은 마귀의 고등술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 주님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를 눈같이 양털같이 희게 해주시겠다(사1: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모든 죄들을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멀리 옮기셨다(시103:12)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죄로 인한 흔적과 기억은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루하루가 늘 새 날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주님께서 사시는 전혀 다른 신분과 존재성을 가진 자입니다(갈2:20). 그분과 함께 동행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사는 천국은 미래에 가는 곳일 뿐만 아니라 현재성이요 현장성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목양칼럼 [새로운 피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