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10월27일, 금)

저는 룻기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곤 합니다. 전반부에 나오미와 두 며느리들이 모두 과부가 되는 이야기는 홀로 되셨던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던 저에게는 가슴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가장들이 없는 집의 처량함과 황량함은 초겨울의 칼바람처럼 얼마나 잔혹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 중에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두 며느리들을 향한 애닮은 권면은 눈시울을 붉히게 합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고백을 읽을 때부터 어두움과 절망이 순식간에 걷혀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둠의 소용돌이 속에서 빛을 보게 되고 삶의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소망과 그리고 인생을 반전시켜주는 어떤 힘을 느끼게 해 줍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더 원하나이다”(룻1:16,17).

 

룻의 시어머니를 향한 고백은 믿음에서 나온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오늘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사랑이 식고 변질되는 무기력과 분노와 파괴의 시대에 사랑의 본질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의 큰 아버지였던 에드워드 8세가 평민의 여인과의 사랑 때문에 결혼을 위해서 왕위를 벗어버린 사건은 유명합니다. 그는 사랑을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지고한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도용하는 세대에 도전을 주는 의미입니다.

 

세상사랑은 무엇인가 오염되어 언제든지 사라지는 신기루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는 사랑의 바탕을 세상의 조건과 원리성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하여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결코 변질될 수도 없고 사라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바울사도는 신앙인의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는 나오는 사랑(딤전1:5)”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랑의 바탕에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신실한 믿음이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신앙인의 사랑의 농도입니다.

 

룻의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사도바울이 말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 사랑처럼 느껴집니다. 후에 룻의 남편이 된 보아스는 룻에게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룻2:11)고 말함으로 사랑은 하나님도 감동시키고 사람도 감동시킴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룻으로 하여금 육신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기록되게 하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크리스챤은 이런 사랑을 누려야 할 특권과 감당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목양칼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단련하신 후의 정금같이(10월26일, 목)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오스 힐먼은 [하나님의 타이밍]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역경의 시기를 지나는 중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역경이 모두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실직하여 꿈을 잃고, 다른 사람은 취직이 되지 않아 괴로워한다. 또 자녀를 묘지에 묻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는 부부도 있고, 암 진단을 받아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역경은 그 행태나 크기면에서 다양하다. 하지만 상처를 입힌다는 점에서만큼은 모두 똑같다.

나 역시 그런 역경을 통과한 적이 있다. 이로부터 내가 배운 사실은, 시련의 와중에도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그분의 관점에서 역경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그 역경을 통과하는 동안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오스 힐먼은 그의 저서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요셉 소명’이 있다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시적인 고통에 이어 장기간 탁월한 사역과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이끌어 가는 이 요셉 소명의 패턴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여정속에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남이 겪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과정들을 통과하는 것이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모양이든 하나님의 섭리속에 허락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일을 통하여 그 분께서 나에게 의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깨닫는 것이 진실로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사역을 하면서 힘든 고난과 환난을 당했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데 장벽을 만나고 고통의 늪을 통과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8,9).

사형선고를 받은 자 같은 처절한 환난을 통과하게 하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셉에게 다가왔던 고난, 욥이 겪었던 고난, 사도 바울이 통과해야 했던 역경은 그들로 세상이 연단시킬 수 없는 통로를 통하여 정금같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이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모양의 역경 앞에 서 있으십니까? 나를 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의도와 방법을 인정해드리고 순종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고백이 되어 결국 정금같이 만들어지고 쓰임받는 역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목양칼럼 [단련하신 후의 정금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