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II – (10월 10일, 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한1서3:16).

성경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사람에 대하여 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compassion)을 가지고 계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마14:14, 눅7:13).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한 영혼에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눅15장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길 잃고 방황하던 한 영혼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한 영혼이라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죄의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영혼 사랑에 대한 일에 자발적인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적어도 남을 실족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한국 선교사화에 보면 토마스라는 영국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27세에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중국에 오자마자 꽃다운 나이의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곧 한반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예수를 모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중국말로 써진 성경을 배에다 싣고 대동강쪽으로 달려왔습니다. 관군들은 배에 불을 지르고 토마스 선교사를 강변으로 끌고 와 그는 칼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순교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 목을 치는 사람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를 죽였던 사람이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한 영혼 사랑하는 순교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양화진에는 선교사의 비석들이 있습니다. 선교사 부인의 무덤, 선교사의 어린 아이들이 풍토병에 걸려 일찍 죽은 무덤, 젊은 나이에 떠난 선교사들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물설고 낯선 한국에 와서 한국의 음식과 옷을 입고 살면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고국을 뒤로한 체 한국민족의 구원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의 영혼 사랑이 저희 가슴에 미안함과 함께 감사함으로 울립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한국교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큰 자산도 사람입니다. 외모와 학식과 부와 명예, 그리고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주님께서 사랑하는 한 영혼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성은 본질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동료들간에, 친척간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끈으로 엮어진 거룩한 삶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I- (10월 9일, 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역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4-11).

예수님은 겸손의 모습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동등된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7절에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10:43-44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 자신은 “사람을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낮은 자리에 앉을 줄 아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섬길 줄 아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자가 강한 자입니다.

“쉰들러스 리스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쉰들러는 독일군 장교에게 “정말 강한 자는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감동적인 말입니다.

예수님은 강한 자이면서도 그 힘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실 때 베드로가 말고라는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립니다(마26:52). 그 때 예수님께서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명령만 하시면 7만 명 이상의 천사들이 내려와 그를 보호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힘을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자기를 낮추셨기 때문에 위대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낮아진 자는 어떤 환경 어떤 여건 속에서도 하늘의 기쁨과 감사를 누립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아프리카의 개척자인 리빙스턴 선교사는 밀림지대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을 고비도 넘기고 말라리아에도 걸려 27번씩이나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가 잠시 영국에 귀국했을 때 켐브리지 대학에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간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을 생각하면 하루도 즐거워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가서 희생하였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장차 나타날 위대한 영광에 비교한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자는 낮아진 마음 때문에 주신 소명의 삶을 즐겁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날마다의 삶을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누립니다. 감사의 카펫트를 깔고 그 위를 걸어갑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 줄 일도 상처받을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낮아진 마음은 스폰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낮아진 마음의 사람은 도약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개구리가 몸을 움추린 만큼 멀리 뛸 수 있는 것처럼 낮아진 마음의 사람은 멀리 도약할 수 있습니다.

김경환 목사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