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5분의 삶처럼(10월24일, 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러시아의 대문호인 토스토예프스키(Dostoyevsky)는 [죄와 벌]등 주옥같은 소설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늘 단 5분의 여분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인생의 가치를 깊이 깨달으며 새롭게 살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1849년 12월 러시아 세묘뇨프 광장에서 반체제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형집행관은 그에게 5분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기가 막힌 최후의 시간동안 무엇보다 헛된 시간을 보내며 살던 자신을 깊이 후회하였습니다. 마지막이 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너무도 소중했던 것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임을 절감하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황제의 명령으로 사형집행이 정지되었습니다. 새롭게 얻은 생명의 희열 때문에 4년 동안의 시베리아 감옥에서의 생활은 마치 천국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머리속으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매일이 최후의 5분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인생을 불태우며 작품들을 쓸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엡 5:16; 골 4:5). 잠자는 자여 깨어나라고 했습니다(엡 5:14). 시간에 빈틈을 주지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살전5:17).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과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살전 5:8).

사도 바울은 분초를 아끼며 살았습니다.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살전2:9, 살후 3:8). 삶의 농도는 대단한 열정과 최고의 헌신과 충성, 그리고 생명까지 내놓는 것이었습니다(행20:24).

저는 LA에서 자비량 목회를 위하여 목수로 일할 때가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얼마나 피곤한지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습니다. 피곤한 삶의 성도님을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바울사도와 같은 뜨거운 열정을 소유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떨 때는 금요예배도 건너뛰고 싶을 정도로 마음도 지칠 때가 있었습니다. 자비량의 목회가 결코 쉽지 않음을 뼈속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제가 한 가지 믿는 것은 바울 사도도 저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늘 성령충만하여 성령께서 감동하시고 인도하시는 뜨거운 가슴으로 살았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삶의 수준과 질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골 3:23). 토스토예프스키가 하루하루의 삶에 최후적인 마음으로 살았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는 종말론적인 신앙의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성령충만의 은혜가 나타난 곳에는 이상스럽게도 주님 오심을 사모하는 종말론적 신앙이 불타올랐습니다. 성령충만하면 매사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말씀과 기도를 사모하게 됩니다. 삶의 자세가 축 쳐지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달려갑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에 힘을 주시고 최후의 삶처럼 충성을 다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목양칼럼 [마지막 5분의 삶처럼]

활의 노래(10월23일, 월)

활의 노래
한 사람의 생애는 죽음을 통해 끝나지만 그 사람의 평가는 죽음을 통해 시작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다윗은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조가를 지었는데 성경에는 이것을 “활의 노래(A lament of the bow)”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은 장인이었고 요나단은 친구이자 매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왕은 다윗에게 대하여 시기심을 느꼈고 다윗을 끊임없이 죽이려고 애썼으나 이와 반대로 그의 아들 요나단은 깊은 우정을 다윗과 나누었습니다.

다윗은 희한하게도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왕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거나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움받은 왕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앞에 다윗은 애통함과 슬픔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의 ‘활의 노래’에서 몇 가지 고백은 크게 감동을 줍니다.

첫째는 전쟁터에서 같은 날 죽음을 맞이한 두 부자의 모습을 아름답고 부끄럽지 않게 표현하였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부자지간의 애뜻한 사랑을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표현하는 문장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그리고 또한 두 사람 모두 용맹한 장수들이었다는 칭송으로 그들의 최후가 결코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사였음을 밝혀주고 있습
니다.

둘째는 요나단에 대한 표현으로 그가 남은 평생 간직한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의 추억을 가늠하게 됩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26절). 요나단은 아버지의 광적인 살기 앞에서 다윗을 생명바쳐 보호해 주었고, 후에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돌보아줄 정도로 그들의 우정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활의 노래’는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특히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후회함 없이 가져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잘해주지 못하고 떠난 후에 후회해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벧전1:22). 성도가 가져야 할 마땅한 사랑의 농도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예기치 않게 찾아옵니다. 성도의 죽음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시116:15). 우리는 갈 본향이 보장되어 있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요1서3:18)으로 감당하는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