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리자(11월26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4..21).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때문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모습 때문입니다. 지킬과 하이드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어두운 면으로 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죄의 결과들을 가져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신비하며 감격적으로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는 절대절망과 절대소망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절대절망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소개하는 절대소망의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 땅에 보내실 예수님을 계속해서 알려주셨고 결국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날을 “Merry Christmas”로 부르며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Happy Holiday”라는 문구가 거세게 점령했습니다. 미국 대통령당선자인 Donald Trump는 선거운동 중 한 인터뷰에서 미국에 “Merry Christmas”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Happy Holiday“라는 용어는 기독교의 바탕위에 세워진 미국이 얼마나 신앙과 멀어져 있는 것인가를 그는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감동적으로 고무되었던 인터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지불하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적절한 은혜의 말씀입니다.

 

바울사도가 로마서를 쓴 당시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정부로부터 그리고 유대인들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박해자와 원수 앞에 서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신앙인으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박해자를 위해서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잠언서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잠25:21). 악에 대하여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박해자와 원수에 대하여 원한 맺힌 마음으로 미워하고 적대시해야 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태도일 수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고 응어리 진 마음을 푸는 통쾌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이러한 태도가 패배자의 모습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들은 결코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선으로 대응하는 것이 결국 승리의 길이요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앙인의 손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결코 패배가 아니었고 위대한 승리였음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늘의 권위가 되어 실천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설교 [ 진정한 승리자 ]

[아픔의 역설적 은혜](6월21일, 목)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23:10).

 

기독교의 역사에 Phoebe Palmer(1807-1874)라는 여전도자가 있습니다. 남편은 의사이고 본인은 감리교의 평신도로서 감리교뿐만 아니라 다른 교단에까지 큰 영향을 끼진 분입니다. 이 분은 성령체험을 통해서 성결한 삶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는데(온전한 성화, Entire Sanctification), 이것이 후에 형성된 오순절교회들과 기존 감리교의 교리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Phoebe Palmer 여사의 신앙과 신학에 깊은 애수를 갖는 이유는 그녀의 삶의 과정 속에 남들이 겪을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깊은 신앙을 체험하며 오히려 한 평생을 온전한 성화의 교리를 실천하는데 묵묵히 걸어간 분이기 때문입니다.

 

Palmer 여사는 20살에 의사인 남편과 결혼하여 그 다음 해에 첫 아이(Alexander)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Alexander는 9개월 후에 하나님 품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Palmer여사는 이 상상할 수 없는 아픈 경험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께 모든 삶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3년

만에 두 번째 아들(Samuel)을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Samuel도 몇 주 후에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Palmer 여사는 이것이 믿음의 연단임을 깨닫고 믿음생활에 더욱 열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결혼 한지 7년 만에 3번째 딸인 Eliza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해에 간호사의 잘못으로 아이가 요람에서 불타죽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Palmer 여사는 여인으로서, 어머니로서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아픔을 체험한 분입니다. Palmer 여사는 이러한 아픔들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왜 부르셨는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기만을 바랬습니다. 기도와 성경모임들을 주관하면서 모임에 참석한 분들이 온전한 성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신학적으로도 존 웨슬레의 온전성화를 현대화시킴으로 신학계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볼 때 Palmer 여사가 남긴 족적은 기독교 역사상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 분이 아픔을 통하여 더욱 더 하나님만 바라보았다는 사실이 더 위대하며, 하나님은 한 가지도 헛되게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셨다는 사실이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고난이 있어야만 온전한 성화가 일어난다고 전적인 동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금같이 나오기 위해서는 용광로를 통과해야 하는 인생의 항해는 세월을 통하여 동감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칭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단 번에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라면, 성화는 점차적으로 성장하는 단계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그것을 본받고 살아야 하며 성장해야 하는 절대과정이기에 신앙의 거룩한 삶이 바로 성화입니다.

 

오늘날 신앙의 문제는 구원받았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화롭게 되는 단계까지 성장해 가야하는 책임을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 가운데 그의 신앙이 순금같이 될 것이라는 고백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세월과 연단과 아픔이 신앙 성숙의 좋은 자극제가 됨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나고 나면 아픔의 과정이 다 감사함으로 고백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