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이름 예수 –사순절묵상 2 ] (2월 21일, 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은 평범하면서도 그 의미가 깊습니다.

 

사람의 이름은 관계성에서 그 의미를 달리 만듭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나와 상관이 없다면 그 이름은 나에게 깊은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이와 반대로 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은 세상의 어떤 이름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의미를 주기도 합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을 때 그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습니다(삼하19장). 다른 사람들에게는 잊혀질 이름이요 별 의미없는 이름일지 몰라도 다윗에게는 가슴에 깊이 묻혀진 이름입니다.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의 이름이었습니다. 뉴저지주에는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지금은 유명한 학교가 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기도원(수련원)이었습니다. 여러 성전 중에 하나가 “요셉성전”이라고 이름지어져 있는데 원장이신 신장로님 내외분이 청년 때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버린 아들의 이름을 그 성전에 붙인 것입니다. 신장로님으로부터 아들의 이름인 요셉을 따서 그 성전에 명명한 사연을 듣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들에게 요셉이라는 이름은 남은 평생동안 가슴에 새겨진 아픔과 그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슴에 품은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이 땅에 독생자로 보내시면서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짓게 하셨습니다(마1:21). 독생자에게 주신 이름 예수의 의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그 이름 자체가 의미이고 진리이며 능력이고 권세가 되셨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 생각이 자주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새벽에 나가셔서 밤늦게 들어오시는 행상을 하셨습니다. 60년, 70년대 그 힘들었던 서울 생활의 고단한 여정은 과부인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도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어머니의 눈물과 아픔의 흔적이 오직 자식들을 위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의 발자취는 자식을 위한 순례길이었습니다.

 

사순절의 핵심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힘에 지나도록 사역하신 것, 고난의 여정을 통과하신 것,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 죽음을 박차고 부활하신 것등 모든 것들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그 관계성에서 오는 의미는 세상과 바꿀 수 없는 지고하고 숭엄한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분과 나와의 관계성 때문입니다. 나의 죄, 나의 저주, 나의 죽음, 나의 영벌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지불하셨습니다. 나와 관계 있는 분, 나와 끊을 수 없는 관계의 하나님, 그분 때문에 오늘 이 땅의 삶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을 깊이 묵상하며 찬양할 때 가슴 떨리는 감격과 감사의 세계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찬202장 3절 “구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리. 영원히 찬양할 나의 노래 예수의 이름이 귀하도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니 나는 참 기쁘다.”의 가사는 이런 감격을 노래한 것임에 놀랍습니다.

 

이 땅의 순례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언제 주님이 우리를 맞으러 오실지 이 또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보장받았으며 이 땅의 삶동안 천국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 예수 때문에 누리고 있는 현재의 은혜 그리고 앞으로 누릴 천상의 은혜를 생각하면 사순절 묵상의 의미가 벅차기만 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그 이름 예수 – 사순절 묵상 2]

 

[ 사순절묵상 ](2월19일, 월)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로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4:1-2)

 

지난 발렌타인 데이(2월14일)는 기독교력으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속죄일)”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날부터 시작해서 부활주일(올해는 4월1일) 전 토요일까지 주일을 뺀 날들이 40일인데 이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재의 수요일에는 전 해의 종려주일(Palm Sunday)에 사용했던 종려나무 가지로 만들어 집의 벽에 장식했던 십자가를 교회에 가지고 와서 불태운 후 그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로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을 묵상하며 고난주간의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을 영어로는 Lent(렌트)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단어로 “봄”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거꾸로 계산하여 주일을 뺀 40일간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내는 절기로 지켜왔습니다.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의미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을 때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출34장).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한 후에 40일년동안의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신8장). 예수님께서 40일동안 금식기도하신 후에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시기도 했습니다(마4장).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40일을 이 땅에서 보내셨습니다(마28장). 이처럼 40이라는 숫자는 고난의 여정, 승리의 여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실제적으로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신 은혜를 묵상하는 기간의 의미가 그 핵심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님들은 크리스챤이라는 이유 때문에 갖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고 그리고 순교의 피를 흘린 분들도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주님의 고난과 승리가 그대로 체험되는 신앙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성찬식과 금식은 참으로 중요한 신앙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참다운 회개를 통하여 신앙을 점검하고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갔으며 금식을 통하여 마음을 지배하는 세상적인 찌꺼기를 제거하였습니다. 오락과 세상적인 즐거움들 그리고 음식까지도 절제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엄격한 금욕적인 면이 강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기가 지나면서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신앙의 절제와 회개와 그리고 십자가의 묵상은 사순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순절기간을 신앙의 무디어진 칼을 갈고 신앙의 푯대를 새롭게 정리하는 수련기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의도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바라봄으로 우리의 현 위치를 깨닫고, 벗어난 궤도를 수정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다운 신앙의 자세와 방향을 정립하는 기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점검과 도약을 위해서는 특별한 집중된 훈련기간이 필요합니다. 사순절기간은 이를 위해 준비된 아름답고 의미있는 훈련기간임이 틀림 없습니다.

 

사순절기간동안 마음의 절제, 말씀의 묵상 그리고 깊이 있는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께 좀 더 가까이, 좀 더 그분을 배우고 이해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점검하고 새롭게 회복하며 강화시키는 귀한 은혜의 기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 사순절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