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없어질 것을 주목하는 인생들에게 ] (6월5일, 화)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the veil)이 벗겨지리라(고후3:16).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번째 돌판을 가지고 내려올 때 얼굴의 피부에서 광채가 흘렀습니다(출34장).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고 하나님을 만나러 들어갈 때는 수건을 벗었습니다.

 

모세가 사람들 앞에서 왜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을까요? 구약은 수건의 비밀을 직접 밝혀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사도바울을 통하여 그 이유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3장에서“사람들이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이 믿고 따랐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후 40일 동안 소식이 없자 그들을 인도할 지도자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모세의 빈공간은 엄청난 것이었을 정도로 모세에 대한 경외심은 대단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얼굴이 빛나는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하나님의 신현처럼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기에 그렇지 않아도 불세출의 지도자인 모세를 우상처럼 섬길 수 있는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던 그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세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건의 비밀을 유대인들이 구약을 읽을 때에 마음이 완고하여 마치 수건을 덮은 것과 같아서 구약 속에 숨겨져 있는 예수님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 도상에서 두 제자에게 구약에 기록된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신 적이 있는데(눅24:27),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이 그러함에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 아직까지도 수건이 그 마음을 덮어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통탄했습니다(고후3:15).

 

그리고 동시에 “언제든지 주(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겨지리라(16절)”는 소망의 복음을 결론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썩어질 것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 장차 지옥에 갈 인생에게 마음을 가렸던 수건이 벗겨져 예수님을 바라보고 영접함으로 영원한 영생과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님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히11:26에서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고 말씀하심으로 모세의 행적은 예수님에 대한 간증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고 계십니다.

 

모세는 썩어질 것, 장차 없어질 것을 주목하며 파묻혀 사는 소망없는 인생에게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을 수건의 비밀을 통하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후5:17)는 진리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왕같은 제사장들] (6월 1일, 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마귀가 해온 가장 무서운 일은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속여 온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도록 역사속에서 방해공작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것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진행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

 

영적인 전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 위에서 실세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영적 전쟁에서 마귀와 대적하여 싸울 수 있는 권세(authority)를 주셨다는 것이요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직접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실세가 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막16:17,18).”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적인 싸움 능히 이길 수 있는 실세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왕같은 존재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왕같은 제사장(벧전2:9)”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은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고 만날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이것은 십자가사건으로 얻어진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Curtain)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마27:51). 성소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달려 있는 것으로 대제사장이 속죄 제사를 드리는 날에 단 한 차례 열렸습니다(출26:33).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과의 막혔던 장벽인 죄를 십자가에서 못박으시고 갚아주심으로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 되어(벧전2:9)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심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히4:16).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하게 달려가는 믿음의 행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께서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2).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에(히13:8), 오늘도 영적싸움에서 넉넉히 이기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행해주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요14:13).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