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같은 제사장들] (6월 1일, 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마귀가 해온 가장 무서운 일은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속여 온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도록 역사속에서 방해공작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것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진행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

 

영적인 전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 위에서 실세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영적 전쟁에서 마귀와 대적하여 싸울 수 있는 권세(authority)를 주셨다는 것이요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직접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실세가 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막16:17,18).”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적인 싸움 능히 이길 수 있는 실세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왕같은 존재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왕같은 제사장(벧전2:9)”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은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고 만날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이것은 십자가사건으로 얻어진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Curtain)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마27:51). 성소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달려 있는 것으로 대제사장이 속죄 제사를 드리는 날에 단 한 차례 열렸습니다(출26:33).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과의 막혔던 장벽인 죄를 십자가에서 못박으시고 갚아주심으로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 되어(벧전2:9)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심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히4:16).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하게 달려가는 믿음의 행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께서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2).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에(히13:8), 오늘도 영적싸움에서 넉넉히 이기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행해주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요14:13).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5월29일,화)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45:8).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의 처지와 형편 그리고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자신있게 “이렇게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인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일들에 대하여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게 하시는가”라고 반문하기도하고 의심하면서 용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욥의 이야기를 통하여 얻어낼 수 있습니다. 욥은 생각지 못한 절망적인 일들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면을 보면 사단이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 행한 일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일어난 불행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결코 우연(by accident)이 없이 하나님의 큰 섭리속에 이루어지는 일들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권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임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1:7)”이라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할 만한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과 아픔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그의 마음과 감정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통해서 얼마든지 그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은 형들을 만나고 자기를 알리게 되었을 때 큰소리로 대성통곡하였습니다. 애굽사람과 바로의 궁중에 들릴 정도였습니다(창45:2). 또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행여나 요셉이 자기들을 죽이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들려주며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창50:17). 이러한 눈물들은 지난 세월 속에 감추어 두었던 아픔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요셉이 아픔과 절망을 가슴에 묻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오늘 본문 말씀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절대믿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애굽으로 종이 되어 팔려온 절망적인 일이나 애굽의 통치자가 된 영광스러운 일 모두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과정에 절망적인 일들을 맞이할 때 그것이 나의 잘못이든, 사단이 그렇게 했든, 나쁜 사람 때문이든, 환경 때문이든, 결국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순종, 자유함 그리고 믿음의 경지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권을 인정할 때 오로지 그분에게서 해결책과 선한 결론을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잘못한 것에 대하여는 철저히 회개하게 되고, 기도해서 해결할 문제들에 대하여는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귀신을 쫓는 것이나 질병의 치료를 위하여 간청하는 일에 강하고 담대함이 수반되지 않겠습니까?

 

결국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청구(Claim)할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니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기뻐하실 것입니다(히11:6).

 

“50:20고백”이라고 알려져 있는 창50:20에서 요셉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다시 한 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