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소서 (10월 20일, 금)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겔34:26).

가을이 깊어진 이곳 시카고 지역에는 며칠 걸러서 계속해서 몇 주 동안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뭄 때문에 집 앞뒤에 누렇게 변했던 잔디들이 짙은 녹색으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단비의 신비를 느낍니다.

 

물부족으로 누렇게 변하는 잔디를 보면서도 물을 주지 못했던 것은 수돗물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수돗물을 아무리 잘 주어도 진한 녹색을 비만큼 만들어 줄 수 없음을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인위적으로 사는 것도 어느 정도 삶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겠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로 사는 인생이야말로 부족함이 없는 풍부한 인생임을 또한 깨닫게 만들어줍니다.

 

얼마 전 라스베가스에서 미국역사상 최대의 총기사고가 있었습니다. 스티븐 패덕(64세)이라는 사람이 호텔창문을 통해 자동총을 무차별로 난사해서 콘서트에 참석했던 수많은 관중들을 사상케 하였습니다(59명이상 사상자, 500명이상 중경상자).

 

즐거워야할 장소가 한 순간에 아비규환이 되었고 지옥처럼 변했습니다. 그 때의 생생환 모습들이 동영상에 올려져 있는데 저는 그것들을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고 몸서리쳤기 때문입니다. 그 후 연방수사국의 조사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도 60년대, 70년대에 은행강도, 사기절도등으로 지명수배되었던 자로 밝혀졌습니다. 인간의 범죄심리는 대를 이어 연속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사악한 일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사랑이 메말라지고 점점 강퍅해져서 마치 누렇게 변하는 잔디의 모습처럼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세상초목들이 하늘의 비를 사모하듯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성령의 단비가 내리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빛이 없는 어두운 세상, 소금 맛이 없어 삶이 무미해지고 건조해지며 썩어가는 세상에,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해 줍니다(마5:13-6).

 

밤하늘에 환히 빛나는 달은 스스로 빛을 비추지 못하고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비추어주시는 빛을 통하여 빛을 세상에 비추어주는 존재입니다. 반사시키는 물건의 표면이 깨끗해질수록 더 효과적인 반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의 그릇이 좀 더 거룩해지고 정결해질 때 우리를 통해서 반사되는 예수님이 빛이 더 영롱해지는 것입니다.

 

세상 하늘 아래에는 더 타락해지는 세대만 있을 뿐입니다. 이 땅의 메마른 심령, 영적인 가뭄과 기갈은 오직 하늘로부터 내려지는 은혜의 단비에 의해 해갈될 수 있습니다. 주여, 이 메마른 시대에 세상에 오염되는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소서!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목양칼럼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소서]

두왕 이야기(10월19일, 목)

♥만나 항아리♥ 웹사이트 10월19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3)/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 저녁 두 명의 청년이 도박장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도박장으로 가는 길에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교회입구에 쓰여 있는 저녁 설교 제목 “죄의 삯은 사망”을 보고 죄의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그 말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은 교회로 한 사람은 도박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간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도박장에 간 친구는 계속 방탕한 생활을 하다 범죄를 하여 감옥을 제집처럼 들락거렸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감옥에 있는 친구는 22대 대통령 취임식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자고 권유했던 자기의 친구였던 사람이 미국의 22대 대통령(Stephen Grove Cleveland)으로 취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을 치고 통곡하였지만 이미 지난 세월은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극명한 인생을 보여주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울왕과 다윗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대왕이었던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두 번째 왕인 다윗은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적인 차이점을 보면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하는 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개에 대한 태도입니다. 두 사람 다 모양은 다르지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회개에 인색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회개의 모양도 있었으나 하나님 앞에 가슴을 찢는 진정한 회개가 없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제사장이 드려야할 번제를 자기가 드렸습니다(삼상13장).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습니다(삼상15장). 사무엘선지자가 찾아왔을 때 그럴싸한 명분으로 변명하였고, 백성들이 두려워서 했다고 죄를 전가하는 치사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결코 회개의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회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던 우리야의 아내를 겁탈하고 우리야를 일선에서 죽게 하는 살인사주죄를 범했습니다. 그는 살인정범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왔을 때 가슴을 찢고 통회하였습니다. 시51편의 회개의 심령으로 쓴 시입니다. 특별히 11절 “나를 주 앞에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라는 고백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회개하는 심령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말씀에 대한 순종여부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삼상 16:23에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사울왕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변에 다윗왕은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시편에는 다윗왕의 말씀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잘 고백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에 대한 의지의 자세입니다.

사울왕은 끝까지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삼상28:5에 사울왕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렸다고 기록하고 있고 결국 앞 일이 궁금하여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에게 변장을 하고 찾아가서 점을 치는 연약함을 보였습니다. 이와 반면에 다윗왕은 청년시절에도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골리앗장군과의 싸움에서 그가 보여준 신앙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상 17: 45,46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저는 사울왕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가 하나님께 회개했더라면 그렇게 비참한 인생의 종말은 맞이하지 아니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동시에 다윗의 극악무도한 죄악이 회개 때문에 사함받고 역사에 남는 왕으로 쓰임받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한량없으심을 세월속에서 깊이 묵상하며 누리게 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 목사 설교 [두 왕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