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능력 10월 11일

♥만나 항아리♥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역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속에서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려지는 고 손양원 목사님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도 감사한 분입니다. 두 아들 동인, 동신군이 1948년 10월 20일 여순 반란사건 때 공산군들에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큰 아들 동인군은“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를 부르면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경찰서 뒤에서 총살을 당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도했고 그의 담대한 신앙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 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손양원목사님께서는 두 아들의 장례식 때 9가지 감사의 인사로 답사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오.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남,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같은 역경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 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정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자매들이 23년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준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손양원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를 탄원하여 살려주고 자기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역경속에서 감사했던 그의 믿음과 행적은 그의 말대로 하나님의 자식들이 한국에 많이 태어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감사의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으로 인한 감사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두 순교자의 여동생인 손동희권사님은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 아직 어린 나이에 어디서 그런 힘찬 찬송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모르리라. 오빠들에게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강한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힘의 이름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그 분 때문에 어둠과 절망의 세계 너머로 환하게 보이는 영원한 삶의 터전인 천국을 주시하며 기쁘게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II – (10월 10일, 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한1서3:16).

성경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사람에 대하여 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compassion)을 가지고 계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마14:14, 눅7:13).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한 영혼에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눅15장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길 잃고 방황하던 한 영혼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한 영혼이라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죄의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영혼 사랑에 대한 일에 자발적인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적어도 남을 실족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한국 선교사화에 보면 토마스라는 영국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27세에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중국에 오자마자 꽃다운 나이의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곧 한반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예수를 모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중국말로 써진 성경을 배에다 싣고 대동강쪽으로 달려왔습니다. 관군들은 배에 불을 지르고 토마스 선교사를 강변으로 끌고 와 그는 칼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순교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 목을 치는 사람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를 죽였던 사람이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한 영혼 사랑하는 순교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양화진에는 선교사의 비석들이 있습니다. 선교사 부인의 무덤, 선교사의 어린 아이들이 풍토병에 걸려 일찍 죽은 무덤, 젊은 나이에 떠난 선교사들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물설고 낯선 한국에 와서 한국의 음식과 옷을 입고 살면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고국을 뒤로한 체 한국민족의 구원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의 영혼 사랑이 저희 가슴에 미안함과 함께 감사함으로 울립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한국교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큰 자산도 사람입니다. 외모와 학식과 부와 명예, 그리고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주님께서 사랑하는 한 영혼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성은 본질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동료들간에, 친척간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끈으로 엮어진 거룩한 삶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