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 – 사순절묵상9](3월16일, 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팔복에 관한 말씀은 많은 가르침 중에 신앙인의 심령에 가장 필요한 마음자세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는 금식기도의 횟수도 줄어들고 금식을 해도 그렇게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창 젊었을 때는 금식기도동안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이 생각이 나는지 기도에 집중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금식하는 중에 너무 배가 고파 작정한 날보다 일찍 끝내고 기도원의 음식점에서 죽과 동치미를 시켜 먹었습니다. 금식이 끝나면 먹어보겠다고 작정했던 음식이었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두 번을 연속해서 사 먹었습니다.

 

대학생 때 학교 근처에서 하숙생활을 하는 중에 상한 음식을 먹고 큰 배탈이 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거의 1년을 위장병으로 고생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야 할 경우도 있었습니다. 몸이 아프다보니 한창 준비하던 고시공부에도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일로 금식기도원에 자주 올라가 하나님께 매달리는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받고 튼튼한 위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계획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식사시간이 되어갈 때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은 육체가 건강하다는 징조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영적인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을 때 그것을 채우기 위해 전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팔복의 말씀 중에 첫 번째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 자세를 의도하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은 “심령이 갈급한 자, 배고픈 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다”는 속담은 배고픈 자에게는 모든 것이 맛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은 말씀도 달고 찬양도 은혜로우면 기도의 시간이 즐겁습니다. 신앙에 열심이 있고 헌신이 저절로 생깁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관계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도 뜨거운 사모함이 생깁니다. 이러한 신앙인을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렘29:1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당연히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행 1:3)에 대한 것을 여러 번 선포(4복음서에 40번 이상)하셨습니다. 주기도문 중에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믿는 자에게 나타날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배고픔입니다. 육체가 건강하면 하루에 몇 번씩 육체적 배고픔을 느끼고 먹은 음식을 잘 소화하여 더욱 강건해지듯이 영적인 배고픔을 느낄 때 말씀에서 금을 캐고 기도에 힘을 얻고 영적으로 강건한 근육을 소유하게 됨으로 세상의 유혹과 싸움에서 능히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한국에는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에 대한 근절과 예방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픔과 상처의 드러냄과 선도의 목적이 진정한 치료와 예방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미움과 복수의 연쇄작용이 될까 염려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아가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세태에 예수 믿는 믿음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되고 심령이 가난해지는 은혜의 물결 속에 있을 때 육체의 소욕을 절제하며 아름다운 신앙의 덕을 이루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가르침이 이토록 감동되고 은혜가 되는 것은 점점 세속화되는 신앙생활에 대한 진정한 회개의 모습일 것입니다. 심령이 배고파 신앙의 사모함이 더욱 회복되는 사순절 기간의 묵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 사순절묵상9]

[ 예수님께 다가온 시험들 – 사순절묵상6](3월6일, 화)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에 가사(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26:41).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두 번의 큰 시험(유혹, temptation, 성경에는 두 가지 단어가 등장합니다. ‘페이라조’는 멸망시켜려는 목적, ‘도끼마조’는 상급을 주기 위한 목적의 시험이라는 단어들입니다. 전자는 마귀의 temptation, 후자는 하나님의 test)이 있으셨습니다. 물론 3년여 기간동안 많은 시험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겪으셨을 많은 시험들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많은 시험이 있으셨고 또한 이기셨을 것이라는 추축을 해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부탁하신 장면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사역하시는 동안 그토록 기도에 힘쓰신 이유가 시험들을 이기시기 위한 방편이 되었음을 보여주시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동안의 금식하시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구약에 기록된 모세의 40일 금식의 의미를 새롭게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대표는 모세이고 신약의 대표는 예수님임을 성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모세의 40일 금식과 십계명, 예수님의 4일 금식과 복음선포는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을 끝내자마자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세 가지를 시험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첫 번째는 먹는 것, 두 번째는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성, 세 번째는 경배의 대상에 대한 시험의 순으로 기록되었고 누가복음에는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바뀌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1) 우리 육신의 필요한 것들과 관계한 시험, 2) 마귀의 뜻대로 살게 하는 시험 그리고 3) 하나님의 신앙에 대한 시험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동일한 시험을 가지고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끊어 버리게 하려고 광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 시험을 보면 금식하신 육신의 예수님께는 먹는 문제가 가장 절실하고 애절한 것이었습니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가장 필요한 것이 음식이었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예수님 앞에 놓인 가장 절박한 상황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두 번째 시험을 보면 마귀의 뜻대로 예수님이 움직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분명함을 마귀도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교묘하게 역이용하여 자신의 의도대로 예수님이 따라오기를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경배의 대상에 대한 시험으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에게 경배하기를 요청했습니다. 우상숭배를 교묘하게 위장하였습니다.

위의 세 가지의 시험을 예수님은 말씀으로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위와 같은 세 가지 시험이 항상 다가옵니다. 나에게 절실한 문제를 통하여 마귀는 깊은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문제속에서 문제만 바라보고 살게 만듭니다. 또한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정해주면서 교묘하게 마귀의 뜻대로(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 살도록 유도합니다. 또한 마귀는 신앙의 시험을 가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없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길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문제의 해결자는 하나님이시며 항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어떤 시험도 결국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다가온 마지막 큰 시험은 자신속에 일어나는 육신적인 생각이었고 이에 대한 싸움은 처절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실 정도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에 대한 육신적인 괴로움과 마음의 갈등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눅22장). 육신적인 예수님의 생각은 십자가를 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맡기시는 기도를 함으로 결국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최후의 시험을 결국 이기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다가오는 큰 시험은 육신적인 욕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것인가 내 뜻대로 살 것인가의 갈림 길에 설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님께 다가온 시험과 그에 대한 대처들을 보면서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비가 기도이며 또 시험이 들었을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말씀임을 배우게 됩니다. 왜 사도들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행6:4)”고 선포했는지 그 의미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기도와 말씀의 절대 중요성이 사순절기간동안 우리의 것으로 체험되기를 깊이 소원합니다.

 

시카고포도나무교회 김경환목사 [예수님께 다가온 시험들- 사순절묵상6]